재외한인연구 제48호 (2019. 06) 1-34
칠레 한인의‘현재형’삶과 표류하는 정착 *1)
최 진 옥 (칠레센트럴대학교)
중남미 한인 이민 역사 중 가장 독특한 모습을 띄는 칠레 한인 사회. 해당 논문을 읽어보면 보다 흥미롭게 칠레 내 한인 사회를 바라볼 수 있다. 특히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던 피상적인 인간관계와 한국사람들은 한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가지 않는다는게 암묵적인 룰이라는 황당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설마 했던 이유가 진짜 이유였던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무슨말인가 하면 칠레 내 파뜨로나또에서 장사를 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의류업에 종사하는데 의류업 특성상 유행이 있어서 어떤 상품이 잘 팔리면 옆집 앞집 뒷집 가리지 않고 모두 다 똑같은 상품을 판매하는 베끼기 전략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한국사회에서 유독 두드러진다고 함.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운영하는 소매가게나 도매점으로는 가지 않는게 암묵적인 룰이고, 온다고 해도 절대 환영받지 못한다고 함. 한마디로 산업스파이 취급 받는 셈.
그러다보니 이런것과는 전혀 관계도 없는 여행자들이 칠레 내 한인거리 한인타운이 있다고 해서 방문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구경을 하다보면 눈총을 받거나 시큰둥한 반응에 기분이 상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바로 이유 때문. 손님이 가게에 오는걸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동기를 의심하는 굉장히 황당하고 편협한 사고의 모습들.
저자는 이런 모습들이 한인사회의 폐쇄성이자 특수성이라고 지적함. 하지만 중남이 한인사회는 대부분 의류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비슷해서 칠레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한인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다른 한인들의 가게를 들여다보거나 하지 않는게 룰이라고 함.
게다가 칠레는 3000여명의 한인 거주자 중 주재원 단기체류자를 제외하고 거의 90%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영주권을 취득하여 거주중인데도 불구하고 칠레를 최종 정착지가 아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이동할 중간 기착지 정도로 생각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두드러진다고 함.
물론 이런 생각은 선진국이 아닌 국가들에 거주하는 한인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동일한 사고방식일 듯 해서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음. 하지만 저자는 인터뷰를 진행한 12명의 사람들이 경제적인 지쥐를 막론하고 현재 거주하는 칠레를 최종정착지로 생각하지 않거나, 그렇다고 해도 자신들의 자녀는 미국으로 보내고 싶어하는 속마음이 있다고 기록함.
암튼 칠레에 이민을 온 사람들은 돈을 벌 목적,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이 보장되는 선진국으로 이동하기 위한 중각 기착지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칠레 주류사회로의 진출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함. 한인 1세대야 그렇다 쳐도 이민의 역사가 짧기도 하고 절대적인 숫자가 적기도 해서인지 한인 2세대 3세대들의 칠레 주류사회 진출에 대해서도 그다지 긍정적인 이야기는 없는게 현실이기도 함.
게다가 한인 커뮤니티는 대단히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그 안에서도 시기 질투 알력이 상존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도 대단히 좁고 얇은 인맥관계가 형성된다고 함. 심지어 한인 인구는 3000명 정도인데 교회는 5곳 원불교당이 1개 등 대단히 많은 종교시설이 존재하고 있음.
이런 종교시설은 한인들의 이민 초기 정착에 대단히 유의미한 암묵지를 제공해주지만 이는 개개인의 사생활을 통제받고 간섭하는 장애물이 되어 칠레에 살면서도 한인커뮤니티에 귀속되어 또 다른 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보임.
한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 내가 무엇을 했는지 순식간에 커뮤니티에 퍼지는 대단한 감시속에 숨막혀 하는 사람듦도 많고 아예 인간관계를 대단히 소극적으로 하거나, 한인커뮤니티와 단절하는 등의 양상도 두드러지고 이런 부분 역시 칠레에 정착하기 보다는 한국으로 역이민, 혹은 다른 선진국으로 갈 것이다 라는 표류하는 마음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보임.
그럼에도 칠레는 영주권을 취득하기가 대단히 쉬운 나라이고, 중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인 치안과 경제상황으로 거주하기에는 대단히 좋은 환경이라 이민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 또한 소득만 뒷받침 된다면 아이들의 교육환경 역시 국제학교를 통하면 대단히 우수한 편이라 마음은 떠있지만 실제 몸은 칠레에 계속 거주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덧붙여 생각해봄.